느리게 흐르는 사계절 벽시계

 

우리 집 벽에는 사계절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느끼기 위해 걸어둔 벽시계.
달그락거리는 초침도 없고, 숫자도 아주 작아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다.

봄에는 연둣빛 꽃잎이, 여름엔 투명한 물결이,
가을엔 누렇게 물든 잎사귀가, 겨울엔 차분한 눈 결정이
시간의 테두리를 따라 흐르듯 자리한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다정해진다.

시간을 쫓던 시절이 있었다.
5분, 10분을 다투며 허겁지겁 하루를 썼던 날들.
하지만 이 벽시계를 걸고 나서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하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듯한 시선이 벽 한쪽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나 역시 바쁘게 움직이지만
이 시계가 전해주는 '느린 사계절'의 감각은
하루의 틈 사이, 내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준다.

지금, 여기를 느끼는 데 충분한 시계.
그게 내가 이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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